View this post on Instagram

5.18 광주민주화운동 하면 떠오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보았어요.. 재즈 느낌을 살리면서도 민중가요 스타일도 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광주 #518 #518광주민주화운동 #assembly518 #임을위한행진곡 #재즈피아노 #강상수

A post shared by 재즈피아니스트&인권교육활동가 강상수 (@duke89kang) on

신경호 화백 인터뷰

#assembly518 #어셈블리518 http://assembly1heart.com/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초혼’ '신경호 화백의 눈빛은 마치 바라보는 대상을 뚫어버릴 듯 강렬했다. 고집스런 선비를 보는 듯한 그의 풍모.젊은 나이에 미술대 교수가 된 그가 겪었던 오월. 그날 이후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한다.광주에 그렇게도 많던 빈민들과 넝마주이들이 모조리 사라졌다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말하는 이가 없다며 가슴아파하는 그의 회한섞인 소회를 들으며 작품 ‘초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안기부 직원들에게 그림을 넘겨주기 전 혹시나 고초를 당할까 두려워 ‘1980년 5월’이라 적은 글귀를 손가락에 침을 발라 뭉개버렸고, 그 일이 지난 40년간 가슴 한쪽을 짓누르는 부끄러움이었다고 고백하는 신경호선생님.지식인이라는 이들의 허위의식과 탐욕,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 세상. 신경호선생님의 한숨소리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리라. '-촬영을 한 최성욱의 페북에서.항쟁이 끝나고 나서 보니까는 그 많던 넝마, 구두닦이들이, 어떻게 청소를 했는지, 하나도 안보이더라고. 이상하더라고. 소리소문 없이 가버렸어요. 그러고 나서도, 아무도 걔네들에 대해서는 입 하나 끗 않더라고. 5.18 당시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였던 신경호 화백, 이름없는 영령들을 위해 제작한 작품 ‘넋이라도 있고 없고- 초혼’이 중앙정보부(안기부)에 압수당했다가 30여년만에 돌아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촬영: 최성욱

게시: One Heart Project 김신윤주 Shine Shin-Kim 2020년 5월 8일 금요일

신경호 화백, 5.18 당시 전남대학교 미술과 교수 인터뷰/ 찰영 최성욱

광주시민 강구봉님 인터뷰 3부

#어셈블리518 #assembly518광주시민 강구봉님 인터뷰 3부인터뷰를 하는 내내깊이 깊이 삭혔을 것임에도 여전히 빛깔 선명한 그 아픔과, 북처럼 가슴을 둥둥 두드리는 뜨거움에 눈물이 북받쳤다.‘진광불휘’ 참된 빛은 번쩍이지 않는다고 했던가?보이지 않은 자리에서 역사를 지탱해 온 그는 광주시민 강구봉!: 엄혹한 시절, 학생시위와 행사장에서 대가 없이 헌신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는 최소한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되지 않겠냐. 라고 생각을 해요.내가 주동자가 안되고, 리더가 아니어도,뒤에서 짐들어주고 밀어줄 사람이 있어야할 거 아니에요?난 그거 했던 것만도 만족해요.다 품앗이지요. 누가 자기 명예를 위해 하겠어요?시민의 도리로 하는 거에요..그 때는, 다 각자의 슬픔이 있지 않았겠어요? 응어리가.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심어준 거, 우리 아버지 상처가,우리 아버지가 밤만 되면 그렇게 악썼던 거.이런 것들을 나는 거기에다 표현한 것 같아요.아버지 살풀이는 못해도 내가 이정도는 한다.그 속에 우리 아버지도 있고,다른 사람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을 것이고,또 사연이 있겠지요.… 보이지 않는 대중의 힘이 있었어요.촬영: 최성욱

게시: One Heart Project 김신윤주 Shine Shin-Kim 2020년 5월 8일 금요일

광주시민 강구봉님 인터뷰3/ 촬영 최성욱

김성용 신부님 인터뷰 롱버젼

어쩌겠어? 그 놈들이 탱크로 몰고 들어오는데.날이 새면 우리 어른들이 총받이하러 탱크로 갈 테니까, 너희들이 도청을 사수해라. 죽음의 행진, 목숨을 건 탈출, 고발장 ‘분노보다 슬픔이’를 써서 광주의 상황을 전국에 알리고 돌아와 자진출두. 1년 2개월의 감옥살이. 그리고 40년. 1980년 5.18 당시 남동성당 주임 신부님이셨던 김성용 신부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촬영: 최성욱‘5월 26일 새벽 계엄군 탱크가 상무대에서 농성광장 쪽으로 진입하자 김성용, 조철현 신부를 포함한 수습위원 17명은 이른 아침에 ‘죽음의 행진’이라 부르는 전남도청에서 농성광장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계엄군의 요청으로 5명의 수습위원 대표가 계엄군 사령부로 가서 마지막 협상을 했으나 실패했다. 김성용 신부가 전남도청으로 돌아오자 홍남순 변호사, 이성학 장로는 “서울로 탈출하여 계엄군의 만행을 알려 달라”고 말했다.김성용 신부는 당일 곧바로 광주를 탈출, 영광과 고창을 거쳐서 전주교구청에서 우연히 만난 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 지도신부인 전 미카엘 신부와 동행해 서울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중. http://m.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54'김신부는 어제(13일)저녁 광주 남동5.18기념성당에서 봉헌한 5.18 39주년 기념미사에서 80년 5.18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직도 5.18유공자들에 대해 '괴물집단' 운운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로 '괴물집단'이다"고 비판했습니다.김 신부는 특히, “자신이 80년 5월 26일 다른 수습위원들과 함께 상무대에 들어가 당시 별 두 개를 달고 있던 군 장성과 4시간에 걸쳐 담판을 벌였다”며 전교사 김기석 부사령관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김 신부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김 소장과 나눈 대화를 일부라도 증언하는 것은 산자의 책임이라 생각한다“며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자리에서 무겁지만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언제든지 주님이 데려가는 순간까지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공개 이유를 밝혔습니다. 당시 김 신부는 전교사 부사령관이었던 김 소장에게 "세상에 어떻게 죽은 여인의 젖가슴까지 악랄하게 도려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자신도 현장에서 젖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낸 것을 봤는데 정작 군인들은 그런 칼이 없다"며 항변하자, 김 신부는 "도둑도 없었고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던 자랑스러운 광주시민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며 맞섰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 자리에서 김 소장은 "군 병원인 일칠병원(당시 국군광주통합병원)냉동실에 군인들의 시신이 너무 많아서 포개놨다"며 "(김 신부에게)가서 확인해 봐라"고 말한 것으로 김 신부는 기억했습니다. 김 신부는 "이는 당시 군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아군끼리 오인 사격이나 교전 등으로 많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자신이 수습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너무나 지쳐 있던 상황에서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스럽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김 신부는 "공수부대의 투입이 1차 살육이었다면, 수습작전은 2차 살육 작전이었다"며 치를 떨었고, "자신도 조비오 신부의 증언처럼 헬기에서 사격을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http://m.gjcatholic.or.kr/page/06.asp?Mode=view&intPage=3&intSeq=39499

게시: One Heart Project 김신윤주 Shine Shin-Kim 2020년 5월 2일 토요일

김성용, 5.18 당시 남동성당주임신부님 인터뷰/ 촬영 최성욱

‘님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 김종률 선생님 인터뷰 롱버젼,'님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자 김종률 선생님을 만나서 엄혹한 시절에 이 노래가 생겨나고 퍼지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가에게 '기록'의 의미란 무엇인지 들었습니다. – 촬영 : 최성욱#어셈블리518 #assembly518 http://assembly1heart.com/

게시: One Heart Project 김신윤주 Shine Shin-Kim 2020년 5월 2일 토요일

님을 위한 행진곡의 김종률 작곡가 인터뷰/ 촬영 최성욱


83년 5월 18일생 이현남/ 촬영 김수환, 조철희 /프로젝트 참여 다큐멘터리

광주시민 강구봉남 인터뷰 2

#어셈블리518 #assembly518광주시민 강구봉 선생님 2부뜨거운 충장로 한 가운데에서 사회 현실에 눈을 뜬 강구봉 선생님.연합청년회에 들어가서 김대중 선생님을 경호하고,해마다 대학생들의 집회와 5.18전야제가 제대로 치뤄지도록 전경들과 싸워대며무대를 만들어 뒤에서 지키고…”오치 쪽에 창고가 있어가지고, 거기에 자재들이랑 준비해서 왔지요. 누가 지시하고 그런 것도 없었고, 다들 자기 돈 써가면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했지요.”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합법적으로 인정되기까지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보이지 않은 곳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분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게시: One Heart Project 김신윤주 Shine Shin-Kim 2020년 5월 8일 금요일

광주시민 강구봉님 인터뷰2/ 촬영 최성욱

광주시민 강구봉씨 인터뷰 1.

#어셈블리518 #assembly518광주시민 강구봉 선생님 1부1980년 5월은 광주 시민 강구봉 선생님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까요?계엄군의 총탄에 친구를 잃고 정신 질환을 얻은 아버지와 가난, 약자에게 한없이 잔인한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보이지 않는 자'로서 뜨겁게 온 청춘.한 많고 멋들어진 강구봉 선생님의 삶을 울고 웃으며 들었습니다.

게시: One Heart Project 김신윤주 Shine Shin-Kim 2020년 5월 1일 금요일

광주시민 강구봉님 인터뷰1/ 촬영 최성욱